[직업과 경제의 만남] (32) '지대' 를 결정하는 감정평가사
누군가 생산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생산요소를 이용할 경우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노동력을 활용한 경우에는 임금을, 자본을 이용한 경우에는 이자를, 그리고 토지를 사용한 경우에는 임대료 내지 지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생산요소를 사용한 대가를 얼마만큼 지불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생산요소를 사용한 대가를 지불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 중 기회비용이 있다. 노동이나 자본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기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노동의 경우에는 여가를 포기해야 하고, 자본의 경우에는 현재의 소비를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기회비용은 무언가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회비용이란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두 가지 이상의 용도에 사용할 수 있을 때 발생하며, 포기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 기회비용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회비용은 가격 측정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특정인을 근로자로 계속 고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해당 근로자는 다른 직장에서 이미 지금 연봉에 1.5배를 약속받고 이직을 권유받고 있는 상태인 경우, 이 사람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계속 다니면, 이직으로 인한 연봉 상승분을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을 현재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게 하려면 해당 근로자의 기회비용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만 할 것이다.

자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정 자본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자본을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 이상을 제공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활용하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기회비용은 생산요소의 이용료 수준을 결정함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 중 하나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우리는 전용수입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을 얻게 된다. 전용수입이란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산요소를 현재 용도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급해야 하는 최소의 비용을 의미한다. 위의 사례에서는 이직을 고민하는 근로자에게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비용은 지금 연봉의 1.5배 수준이며, 이것이 전용수입에 해당한다. 이러한 전용수입은 공급자 입장에서는 생산요소를 현재의 고용 상태에 제공하는 것과 관련한 기회비용을 의미한다.

토지, 생산성 차이로 등급 매겨

토지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원래 지대(rent)란 전통적으로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에게 귀속되는 소득을 말하는 용어였다. 과거에 토지의 경우에는 곡물을 재배하는 것 말고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법이 없었다. 따라서 지주 스스로 토지를 경작하지 않는 한 토지에 대한 기회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빈 땅을 누군가 이용할 경우 그 사람이 지불해야 할 적정 임대료 수준의 근거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초창기 경제학자 리카도(D. Ricardo)는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토지의 생산성 차이에서 찾았다. 그는 토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생산성이 높은 토지뿐만 아니라 생산성이 낮은 토지도 사용하려는 수요가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토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수록 이런 추세는 계속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지주는 생산성의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을 지대로 요구할 수 있다고 리카도는 설명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생산성에 따라 각 토지에 등급을 매겼다고 가정하자. 그 과정에서 2등급 토지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면, 1등급 토지의 소유자들은 소작농들로부터 지대를 받을 수 있다. 이때 지대는 1등급 토지와 2등급 토지의 생산력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보다 생산성이 높은 토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3등급의 토지에 대한 수요가 발생할 경우 2등급 토지의 소유자들은 2등급 토지와 3등급 토지의 생산력 차이만큼 지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토지·건물의 경제적 가치 판정

우리는 지대라는 것이 공급이 비교적 제한된 요소에 대해 대가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토지까지 사용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생산성이 높은 토지가 무한히 많다면 지대가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적정한 지대 수준을 평가하는 업무를 감정평가사가 담당하고 있다. 감정평가사란 부동산, 동산을 포함하여 토지, 건물 등의 재산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판정하여 그 가격을 확정해 표시해 주는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부동산 관련 가격 등을 살펴보면, 정부가 고시한 공시지가라는 것이 있는데 이러한 공시지가를 평가하는 업무가 감정평가사의 업무 중 하나이다. 또한 감정평가사는 기업 등이 보유하고 있는 일련의 자산 가치를 평가하는 업무, 금융거래 시 담보 내지 매매 대상이 되는 토지, 건물 등의 적정 가치를 판단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도로 내지 공원 조성과 같은 공공사업의 평가 또한 감정평가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개별 경제 주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형태 중 부동산 비중 높기 때문에 감정평가사 업무의 중요성은 크다 할 것이다.

최근 이러한 감정평가사의 업무 범위는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는 앞서 설명한 전통적인 지대의 개념이 최근 여러 경제 상황으로 확대되어 활용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전통적인 지대와 달리 지대의 개념을 확장하여 적용한 개념으로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가 있다. 경제적 지대란 생산요소에 지급되는 비용 중에서 그 생산요소가 공급되도록 유도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초과하는 부분을 말한다. 여기서 초과되는 비용이라는 것은 어떤 생산요소를 현재의 용도에 사용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최소한의 비용을 전용수입이라고 하는데, 경제적 지대란 바로 전용수입을 초과하여 지급한 비용을 말한다.

항공기·기업가치 등 영역 확대

감정평가사가 평가하는 대상들 역시 전통적인 지대의 범주에 들어가는 토지, 건물뿐만 아니라 기계기구, 항공기, 선박, 유가증권, 영업권, 기업가치평가 등과 같은 유무형의 재산까지 업무의 범주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감정평가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소정의 자격시험을 먼저 통과한 후 1년 이상 관련 분야에서 수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감정평가사 시험은 1차와 2차로 나누어지는데 1차의 경우에는 감정평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 소양과목이라 할 수 있는 경제학, 회계학, 영어, 관련 법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차 시험은 실질적인 감정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감정평가실무, 감정평가이론,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등이 해당한다. 최근에는 연간 200명 정도의 감정평가사가 시험을 통해 배출되고 있다. 합격률도 20%를 넘지 않을 만큼 고도의 전문성이 담보된 직업이라 할 것이다.

[직업과 경제의 만남] (32) '지대' 를 결정하는 감정평가사
최근 장기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한때 고소득 전문직으로 평가받던 감정평가사의 인기가 주춤한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해 매년 지원자와 응시자 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정통적 지대의 개념이 다양한 경제 활동 분야에 적용되어 경제적 지대라는 개념으로 활용되었듯이, 감정평가사들이 갖고 있는 적정가치 추정의 전문성은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여지가 많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앞으로도 감정평가사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지대

공급이 완전히 고정된 생산요소가 얻게 되는 보수를 의미한다. 즉, 단기, 장기를 막론하고 공급이 일정하게 고정된 생산요소가 생산과정에 참여하여 얻는 보수를 지대라고 한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