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떨어진 단기외채 비중

우리나라의 총외채 중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9년 2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외채 구조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는 “작년 12월말 기준 총외채는 4166억달러로 전년말 대비 72억달러 증가했다”고 19일 밝혔다. 이중 단기외채는 1128억달러로 전년말 대비 143억달러 감소했으나, 장기외채는 3037억달러로 216억달러 증가했다. - 2월 20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나라경제 건실성 보여주는 외채규모·외화 유동성
☞ 한 나라 경제가 건실한지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일자리는 늘어나는지, 물가는 안정돼 있는지, 국제수지는 균형이나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보고 나라경제의 상태를 판단해볼 수 있다. 또 다양한 국제금융지표도 활용되는데 이 지표는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그 나라 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나라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알려주는 국제금융지표에는 크게 △자본유출입 규모 △외채 규모와 건전성 △외화 유동성 △환율 변동성 △해외 차입 여건 등이 있다. 자본유출입 규모는 외국인이 얼마나 한 나라에 투자했는지를 알려준다. 외국인이 투자한 돈이 빼내간 돈보다 많다면 그 나라 경제에 대한 외국인의 신뢰가 높다는 뜻이고 반대면 신뢰가 낮다는 뜻이다. 외채 규모와 건전성은 외채의 절대 규모와 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중, 1년내에 갚아야 할 단기외채와 만기가 1년 이상인 장기외채의 비율 등을 보고 따진다. 외화유동성은 정부가 비상시에 대비해 갖고 있는 외환자금인 외환보유액이 충분한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거주자(기업 포함)들이 은행에 외화자금으로 맡겨둔 외화예금은 얼마나 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단기외채 비율 15년만에 최저

그러면 지난해 국제금융지표를 기준으로 본 대한민국 경제의 건전성은 어느 수준일까?

먼저 자본유출입을 살펴보자.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3년 한해동안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43억달러 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이는 주식 총매수 금액에서 총매도 금액을 뺀 순매수 금액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되돌아가는 와중에서도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을 좋게 봤다는 뜻이다.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가 본격화된 지난해 3분기 이후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수 규모는 129억달러에 달했다. 태국 인도네시아 남아공 등은 들어온 외국인 자금보다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많았으며 브라질 인도 대만 등은 순매수 규모가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했다. 채권 시장에서도 외국인의 순매수액은 25억달러에 달했다. 지난 한해 외국인들이 국내 자본시장에 68억달러를 순투자한 셈이다. 외국인들의 누적 투자금액은 지난해말 현재 주식과 채권을 합쳐 520조원이 넘는다.

외채 규모에서도 대한민국의 성적표는 비교적 상위권이다. 외채(外債)는 정부나 금융회사, 기업 등이 해외에서 차입한 돈이다. 은행에서 주택대출을 받을 때 10년, 20년 등 만기를 정하듯이 외채에도 만기가 있다. 만기가 1년 미만인 경우를 단기외채라고 하고 그 이상일 때는 장기외채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의 총 외채는 2012년말 4094억달러에서 2013년말 4166억달러로 72억달러(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 2.8%보다 증가율이 낮다. 작년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외채 비율은 34% 수준이다. 총 외채 가운데 1년이내 갚아야 할 단기외채는 2012년말 1272억달러에서 2013년말 1128억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이에 따라 단기외채가 총 외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31.1%에서 27.1%로 낮아졌다. 외국 빚이 별로 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빚의 질도 좋아졌다는 뜻이다. 단기외채 비중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9월말 51.9%에 달했다.

외환보유액도 사상 최대

반면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외화자금은 많아졌다. 외환보유액은 작년 11월말 현재 345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2년말(3270억달러)에 비해 180억달러가 늘었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율은 32.7%로 2005년말(31.3%) 이후 8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값이 100%를 넘으면 외환 비상자금보다 갚아야 할 외채가 더 많다는 의미여서 대외 지급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체로 100% 미만이면 안정 수준, 100~200%이면 경계 수준, 200%를 초과하면 위험 수준으로 본다. 또 거주자 외화예금은 기업이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꾸지 않고 외화로 예금한 금액이 늘고 위안화 예금도 증가하면서 전년말보다 126억달러가 불어난 486억달러(2013년 11월말 기준)에 달했다.

원화 환율도 안정세 유지

일부 국가의 경우 통화 가치가 크게 흔들린 반면 원화의 가치는 안정세를 유지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2012년말 달러당 1070.6원에서 지난해말 1055.4원으로 1.4%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일본 엔화 가치가 17.9% 하락(환율 상승)한 것을 비롯, 호주(14.7%), 브라질(12.7%), 인도(11.5%), 싱가포르(3.5%) 등이 일제히 통화 가치가 떨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원화의 변동성도 지난해 0.34%로 2012년(0.29%)보다는 소폭 높아졌지만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환율, 다시 말해 외국돈과 비교한 우리돈의 가치가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나타내는 지표가 변동성이다. 환율의 변동성은 크게 △하루중 환율의 최고가에서 최저가를 뺀 일중변동폭과 △그날 종가 환율에서 전일 종가 환율을 빼서 구하는 전일대비변동폭으로 측정한다.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돈을 빌리는 여건도 좋았다. 한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의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은 지난해 12월말 현재 65bp(베이시스 포인트, 1bp=0.01%)로 2012년말 67bp에 비해 소폭 낮아졌다. CDS 프리미엄은 해당 채권이 부도가 날 경우에 대비해 일종의 보험료 성격으로 내는 수수료로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채권의 부도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의 CDS 프리미엄이 65bp라는 건 한국 정부의 채권 1억달러 어치를 살때 부도가 나도 원리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게 투자위험을 헤지하려면 65만달러의 보험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기준 주요국의 CDS 프리미엄은 인도네시아 236bp, 브라질 193bp, 중국 80bp 등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부도확률을 인도네시아나 브라질, 중국보다 훨씬 낮게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 줘야 하는 이자도 크게 줄었다. 외평채 가산금리는 지난해 1월초 140bp에서 지난해말 92bp로 크게 떨어졌다.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에는 이자가 기준금리에 일정한 가산금리를 더해 정해지는데 가산금리가 높을수록 발행 국가의 신용이 낮다는 뜻이다. 기준금리로는 보통 리보(런던은행간 금리)가 활용된다.

나라 재정 튼튼해야 위기 안당해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나라경제 건실성 보여주는 외채규모·외화 유동성
요즘 터키 남아공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은 미국 출구전략의 유탄을 맞아 외환위기 가능성이 있는 위험국가로 분류된다. 이들 국가의 특징은 단기외채가 많고 경상수지가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국제금융 관련 통계로 살펴볼 때 우리 경제는 지난해 비교적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각이 호의적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우호적 시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꾸준하게 성장하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이어가며 나라살림(재정) 또한 튼튼하게 하는 게 대한민국 경제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길이다.

강현철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