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상품권의 경제학'…소비는 활성화되지만 물가는 어떨까
국내에서 상품권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30년 일제강점기다. 오늘날 신세계 백화점의 서울 충무로 본점 자리에 있던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이 처음으로 상품권을 발행해 유통시킨 것이다. 해방 후 자취를 감췄던 상품권은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다시 등장했다. 먹거리가 귀한 시절에는 설탕·조미료 교환권이 큰 호응을 얻었고 1990년대에는 구두상품권,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백화점 상품권이 인기를 끌었다. 시대에 따라 인기 품목도 달라진 것이다. 어느덧 80년 역사를 지닌 상품권은 연간 발행 규모가 10조원에 달하고 그 종류도 200여종이 넘는다. 시장 규모는 매년 30% 성장하는 추세다. 상품권은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일부에서는 급격히 증가하는 상품권 시장이 과소비를 조장하고 물가를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연 10조원·200여종 발행

상품권이란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금액이 정해진 일종의 채권이다. 이 증서를 발행점이 취급하는 모든 상품을 구입할 수 있어 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 주로 백화점·유명 제화점에서 발행되고 최근에는 주유·도서·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상품권 등 다양하게 발행되고 있다.

상품권이 백화점처럼 수많은 상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주로 발행되는 이유는 상품권을 받는 사람이 자기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를 수 있고 편리한 시기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행한 회사 입장에서는 상품권 발행금액만큼 무이자 차입자본 구실을 하기에 경영에 유리하고 발행자로서의 명성과 신용도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Focus] '상품권의 경제학'…소비는 활성화되지만 물가는 어떨까
국내 상품권 연간 발행금액은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지난해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3사와 홈플러스가 5조1000억원어치, SK GS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8000억원 가량을 발행했다. 문화상품권 6000억원, 전통시장에서 쓰는 온누리상품권은 3200억원어치가 발행됐다. 이 밖에 구두상품권, 의류상품권 각종 음식점과 제과점이 발행하는 상품권, 지방자치단체 상품권 등이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받고 싶은 선물 1위'

1980년대 후반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금강제화 매장. 추석 연휴 직후 문을 연 상점 안은 순식간에 고객들로 가득찼고 몰려든 인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매장 전면 유리창이 와르르 무너지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설 추석 명절과 연말연시는 상품권 판매의 최고 대목이다. 상품권은 몇 해째 명절 때 받고 싶은 선물 설문조사에서 1위로 꼽힌다. 꾸준하게 명절 선물로 사랑받아온 상품권은 그 인기 품목이 세월 따라 변해왔다.

1960년대 먹을 것이 귀하던 당시에는 설탕과 조미료 교환권이 큰 인기를 끌었다. 상품권이 과소비를 조장하고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1975년 발행이 전면 금지됐다가 1994년 상품권법이 제정되면서 다시 발행이 허용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 상품권의 대표주자는 구두상품권이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백화점 상품권이 가장 인기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3사의 상품권 발행금액은 1994년 1000억원이 채 안 됐지만 지난해 4조원을 넘었다. 발행 규모가 20년 만에 40배 커졌고 전체 상품권 시장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최근엔 모바일 상품권이 활성화되면서 지난해 백화점 상품권 중 25%인 1조원 정도가 모바일로 판매됐다.

#물가 자극하는 '유령통화'

백화점·주유·외식·구두·문화 등 상품권의 종류는 200여종에 달한다. 국내 상품권 시장은 지난해 사상 최초로 8조원을 넘어 올해는 10조원으로 예상된다. 유통업계는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상품권, 대형마트, 소규모 시장, 동네 가게에서 사용되는 것까지 합치면 상품권 시장 규모는 수십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한민국이 가히 ‘상품권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각종 상품권의 범람을 우려하는 이유다.

경제 전문가들은 상품권 발행 규모가 커지면 통화량과 물가를 걱정한다. 상품권의 경우 액면가 그대로 현금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화폐 규모인 통화량 부문에는 제외돼 있다.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실제 화폐처럼 거래되면서도 정작 실상을 파악할 수는 없는 ‘유령통화’가 된 셈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상품권 발행이 과다해질 경우 과소비 조장으로 인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품권은 구입 물품과 구매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과소비 조장, 세금 포탈 등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구입자가 돈을 먼저 내고 상품권을 사고 그 상품권으로 물건은 나중에 구매하는 특징 때문에 상품권 발행자가 부도가 나거나 잔액 환불 거부, 세일 기간 중 사용 거부 등의 소비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뱃돈의 변천사…현금→문화상품권→모바일상품권

[Focus] '상품권의 경제학'…소비는 활성화되지만 물가는 어떨까
지난 설 명절에 청소년들은 세뱃돈으로 무엇을 가장 많이 받았을까?

세뱃돈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헌으로 보면 약 100년 전으로 올라간다. 당시 세배의 답례로는 음식을 내놓는 게 관례였다. 1920년대쯤 되서야 세뱃돈, 세백삯, 절값 등의 이름으로 돈을 주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1960~70년대는 경제 사정이 빠듯해 음식을 배불리만 먹어도 만족하던 때였지만 세뱃돈 풍습이 자리잡은 시기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 붕어빵 1개 가격이 10환 정도인 시절에 설날 세뱃돈은 보통 30~80환을 받았다. 1980년대 초 지폐의 최소 단위로 1000원이 발행되면서부터는 아이들 세뱃돈도 1000원으로 뛰었다.

90년대 경제 성장이 본격화하면서 세뱃돈은 만원 단위로 껑충 뛰었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다시 천원짜리가 등장하는 등 세뱃돈도 경기를 탔다. 이후 5만원권이 등장하면서 세뱃돈에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최근 세뱃돈으로 현금 대신 문화상품권이나 카드 형식으로 된 전자 상품권을 주기도 한다. 문화상품권은 5000원 단위로 2만~3만원어치 세뱃돈으로 주면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볼 수 있어 설 전에 문화상품권 매출이 급증한다.

최근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종이 상품권 대신 모바일 상품권이 인기를 끈다. 오픈마켓 옥션이 지난해 1월과 올해 1월의 모바일 상품권 판매 현황을 비교한 결과 15배 증가했다. 모바일 상품권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 종이 상품권보다 5%가량 저렴해 부모가 인터넷에서 구입해 자녀의 스마트폰으로 직접 전송해줄 수 있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