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삼성은 모토로라와 노키아보다 훨씬 더 많이 애플 제품을 베꼈기 때문에 두 경쟁자를 제치고 엄청난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었다. 모토로라와 노키아 같은 회사가 가라앉고 있음에도 삼성만이 번성하는 데 대한 이유는 바로 이 베끼기 전략에 있다.” 지난 11월15일 애플의 필 실러 애플 부사장이 삼성과의 특허소송에서 한 말이다. 이에 대해 삼성은 “삼성 제품을 찾는 사람은 삼성 제품과 애플 제품 간 차이점 때문에 찾는 것이지 유사점 때문에 찾는 게 아니다”며 맞받아쳤다.

스마트폰 선두주자인 애플과 이를 따르는 삼성 간의 관계는 모방과 혁신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삼성이 지금의 높은 기술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선두주자였던 애플에 대한 모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방을 넘어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모방은 언제나 바람직한 것일까. 오늘 다뤄 볼 주제는 모방의 가치와 한계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한 기출문제는 다음과 같다.

2013 숭실대 수시 기출 : 모방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2013 건국대 모의 문제 : 모방성과 기업가정신, 혁신과의 관계
2011 한국외대 수시 기출 : 모방을 통한 성공의 비결
2010 항공대 수시 기출 : 모방과 창조의 관계
2010 시립대 수시 기출 : 지적재산권 보호와 모방의 문제


▧ 플라톤 vs 아리스토텔레스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에 대해 서로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다음의 <건국대 2013 모의> 제시문을 통해 확인해보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모방이 인간 영혼의 가장 저열한 부분을 유혹하고 진리와 본질을 왜곡시키는 기능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한다. 이를 위해 ‘세 개의 침대’라는 일화를 이용한다. 신, 장인, 화가가 지배하는 일종의 세 개의 침대가 존재한다. 신은 본질적 침대인 단 하나의 침대를 제작하였다. 이 침대는 침대의 이념, 즉 침대의 본질, 참된 침대, 침대의 ‘자연스런’ 형상이다. 어떤 목수라 하더라도 ‘자연스런’ 침대를 제작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플라톤에게 있어 진실한 자연이란 관념적 본질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장인은 ‘인위적인’ 침대를 제작할 수 있을 뿐이다. 장인은 ‘침대의 목수’이며, 이 물건을 생산해낸다. 이것은 모방자인 화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화가는 자연과는 두 단계 떨어져 있는 모방자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플라톤이 보기에 시인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화가의 이미지는 실제 이미지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는 모방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교육에 기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보여준 부정적인 입장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희곡은 그 근원에 있어서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두 가지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첫째, 모방은 인간의 유아기부터 발현되는 본능이다. 인간은 모방의 본능이 강하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구별이 된다. 더구나 모방을 통해서 인간은 지식을 얻게 된다. 둘째, 모든 인간은 보편적으로 모방된 대상을 보면서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현실에 있어서는 혐오스런 짐승이나 끔찍한 시체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형상이 세밀하고 충실하게 묘사된 그림을 보면 우리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보고 배우게 되는 것이 유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지가 제공하는 즐거움은 우리가 백안시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품위를 훼손하기는커녕 오히려 배움의 동기 부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모방과 이미지가 우리의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예술에 관한 논의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방에 관해 두 사람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모방을 부정적으로 보는 플라톤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데아(Idea)’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와 현상세계로 나눴다. 이데아의 세계는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인데, 현상세계는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한 껍데기이자 환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모방에 대한 모방’ 식으로 사물에 대한 모방이 거듭될수록 그것은 본질과 진리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고 변형시킬 뿐이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한다. 모방은 인간의 본능일 뿐만 아니라 모방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이것은 배움과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다.

▧ 창조 vs 혁신

모방의 본질과 관련된 논의 외에도, 모방의 현실적 가치를 둘러싸고 다음과 같은 견해의 대립이 존재한다. <시립대 2010 기출문제>를 통해 확인해보자.

발명, 고안, 디자인 등을 최초로 해내거나 개발하기는 힘들지만 그것들을 모방하기는 매우 쉽다. 그래서 모방을 무제한 인정하면 최초 개발자나 창작자의 노력은 보상받기 어렵다. 과거처럼 발명이 우연의 산물이거나 취미로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설사 모방이 행하여진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가치 있는 발명이나 고안이 주로 기업의 막대한 투자를 통해야만 가능한 경우에는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컴퓨터나 휴대폰 등에 사용될 핵심 부품을 개발하는 데에는 보통 수년 동안의 노력과 수천만 달러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품을 모방하는 데에는 최초 개발자가 들인 노력과 비용의 100분의 1 또는 그 이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후발주자가 최초 개발자의 업적을 쉽게 모방한다면, 후발주자는 위와 같은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기술을 획득하게 되고 따라서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선발주자가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그 누구도 위험부담을 안고 기술개발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정체와 퇴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시립대 2010 기출문제>의 제시문을 계속 살펴보자.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산업의 경우에는 실제로 모방이 혁신을 촉진하고, 강력한 특허는 이를 방해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산업들이 혁신에 있어 순차적이고 보완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순차적’이라 함은 윈도즈(Windows)와 도스(DOS)처럼 시간적으로 뒤에 이루어진 발명이 앞서 이루어진 발명에 근거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비하여 ‘보완적’이라 함은 서로 다른 혁신가들이 동일 주제에 대한 연구를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특정한 연구의 목적을 주어진 시간에 달성할 확률을 높이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을 가지는 산업에서는 한 기업이 소유한 특정 제품에 대한 특허는 경쟁자들이 그 제품을 활용하여 추가적인 혁신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게 된다. 기업은 모방하고 경쟁하면서 발전한다. 모방은 기업들의 현재 이익을 다소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수익성이 높은 추가적 혁신을 할 수 있게 한다.

기술의 혁신은 오히려 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 중반까지 특허 보호에 대한 개념이 미약했는데, 이 시기에 컴퓨터, 소프트웨어, 반도체 분야에 엄청난 성장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후 특허 보호가 강화되면서 특허를 가진 기업들이 기술 독점과 폐쇄성을 전제로 오히려 기술개발비를 동결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모방의 금지가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기술 혁신을 막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아는 만큼 쓰는 논술] (26) 모방과 혁신
▧ 창조 & 혁신


모방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검토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모방과 혁신의 관계는 무엇일까. 이를 잘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다. <건국대 2013 모의> 자료를 통해 확인해보자.

오른쪽 그래프는 사회조직의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보여준다. 모방을 통해 혁신하고자 하는 집단(높은 모방성)에서는 기업가 정신과 맞물려서 외부관계, 채용훈련 등에서 조직의 혁신이 잘 이루어진다. 그러나 모방성이 낮을 경우 기업가 정신이 높아지더라도 조직의 진취적 경영혁신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의 혁신에 모방성이 긍정적으로 기여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러나 두 그래프가 교차하는 지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업가정신이 낮은 경우에는 오히려 높은 모방성이 기업의 혁신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모방의 타성과 편안함에 젖어 창조와 혁신을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즉, 모방을 배움과 성장의 계기로 삼느냐 아니면 베끼는 데 만족하면서 정체되어 있느냐는 기업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지만, 혁신의 장애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