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채무계열제도와 재무구조 개선 약정
현대그룹 등 13개 대기업 집단이 채권은행이 관리하는 ‘주채무계열’에 내년부터 포함될 전망이다. 또 3곳 정도가 ‘관리대상계열’로 새로 지정돼 채권은행의 밀착 감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5일 주채무계열 범위를 확대하고 관리대상계열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기업 부실 사전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 11월 6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은행, 감시망 확대…대기업 부실 미리 차단

# 주채무계열 제도란?

대형 금융사의 파산은 금융 시스템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5위의 투자은행(IB)이었던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세계경제에 끼친 영향을 보면 대형 금융사의 부실이 얼마나 전염성이 높고 위력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대기업의 파산이나 부도도 나라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막대하다. 특히 한국처럼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국가의 경우는 더 그렇다. 그래서 적지 않은 나라는 대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빌려준 금융회사를 통해 대기업들이 건전하게 경영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규제하고 감독한다.

‘주채무계열’ 제도는 바로 대기업의 경영 건전성을 규율해 기업 부실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다. 은행 여신(대출)이 많거나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들을 골라 재무구조 등이 건전한지 상시 감독하고 필요할 경우 채권단을 통해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제도다.

주채무계열 제도는 2002년 도입됐다. 외환위기로 대우 기아 고합 등 대기업 그룹이 줄줄이 부실화돼 경제에 큰 충격을 주자 이들에 대한 선제적 부실 관리를 위해 도입한 제도다. 정부가 10여년 만에 이 제도를 크게 손질하기로 한 이유는 부실 우려가 있는 기업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동양 그룹처럼 틈새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늘어나 제도의 실효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판단에서다.

주채무계열 대상이 되는 기업은 현재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돈이 우리나라 전체 신용공여액의 0.1%(현재 약 1조6000억원) 이상인 기업집단(그룹)이다. 가령 A그룹의 작년말 현재 금융사 신용공여액이 2011년말 현재 금융사 전체 신용공여액의 0.1% 이상이면 주채무계열 대상 기업집단으로 선정된다. 현대자동차, 삼성, SK, LG, 현대중공업, 한화, LS, 대우조선해양, 효성, CJ, 동부, 신세계, STX, 금호아시아나 등 웬만한 그룹은 거의 다 들어가 있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은행, 감시망 확대…대기업 부실 미리 차단
2002년 이전에도 주채무계열 제도가 있었는데 당시엔 금융사로부터 빌린 돈이 많은 상위 60개사가 대상이었다. 주채무계열 기업집단은 2002년 35개에서 2004년 25개까지로 줄어들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엔 45개로 늘었다. 현재는 30개사가 지정돼 있다.

주채무계열 그룹으로 지정되면 채권 은행이 대출상황을 포함한 기업 경영정보를 종합 관리하게 되며 상시적으로 재무구조도 평가하게 된다. 또 부실화가 우려되면 채권은행협의회를 구성해 대책도 수립한다. 만약 주채무계열 그룹의 재무구조가 나빠지면 약정체결계열 대상으로 분류,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해 경영개선 계획 등을 면밀히 관리하게 된다. 이와 함께 분기별·반기별로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명기된 기업의 자구 계획 이행 상황도 점검한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은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라 주채무계열로 정해진 그룹에 대해 매년 초 주채권 은행이 재무구조를 평가, 상태가 나쁜 곳과 약정을 맺고 부채비율 하향, 자산매각을 통한 현금 마련 등 재무상태를 개선하도록 독려하는 제도다.

# 제2 동양 사태 방지가 목표

금융위원회가 이번에 내놓은 ‘기업 부실 사전방지를 위한 관련제도 개선방안’은 이 같은 주채무계열 제도를 더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제2의 동양 그룹 사태를 막는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동양 그룹이 부실화돼 큰 사회적 파장을 야기하고 있으나 주채무계열 제도상의 약점으로 사전에 이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깔려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주채무계열 편입 대상을 확대하고 △재무구조 평가방식을 개선하며 △관리대상계열 제도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먼저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은 현행 ‘금융권 총신용공여액×0.1%’에서 ‘금융권 총신용공여액×0.075%’로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주채무계열 대상으로 지정되는 그룹들이 늘어나게 된다. 금융위는 대상 그룹이 가장 많았던 2009년 45개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주채무계열로 선정되면 재무구조를 평가받아야 한다. 경기가 별로 좋지 않아 대기업의 수익성 및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추가 부실 우려가 커진 데 따른 대책이다.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2010년 483%에서 2012년 382%로 뚝 떨어졌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지급이자로 나눠 계산하는데 기업이 벌어들인 돈 가운데 어느 정도가 이자로 나가는가를 측정한다. 차입금을 총자산으로 나눈 차입금 의존도는 2010년 19.6%에서 2012년 25.2%로 뛰었다.

또 주채무계열 그룹 가운데 경영이 부실해 약정체결대상 그룹으로 선정되는 재무구조평가 기준이 깐깐해진다. 약정체결대상 선정은 현재 △재무평가방식과 △비재무평가방식이 있다. 이 가운데 재무평가방식은 부채비율, 매출액 영업이익률, 이자보상배율 등이 기준이다. 부채비율의 경우 현재는 200% 미만에서 400% 이상까지 5단계로 나눠 평가하는데 이를 8단계로 세분화해 좀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개선된다.

현재 3개년 단순 평균비율을 적용하고 있는 매출액 영업이익률과 이자보상배율 역시 최근 사업연도의 실적에 더 가중치를 두는 방식으로 개편된다. 재무구조가 취약해질 우려가 있는 대기업들을 조기에 뽑아내기 위한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는 사실상 반영되고 있지 않은 비재무평가방식도 앞으론 적극 활용된다. 지배구조위험, 영업추이 및 전망, 해외·금융 계열사 상황, 우발채무 위험, 재무적 융통성 등 7개 항목을 평가, 지수화해 약정체결대상 그룹을 고른다.

주채무계열 그룹 중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곳도 ‘관리대상계열’로 지정돼 따로 관리받게 되는 제도도 신설된다. 채권 은행들은 관리대상 기업과 정보제공 약정을 맺어 기업 경영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가이드라인도 체결해 경영 정상화에 노력하게 된다.

# 재계는 경영 자율성 후퇴 우려

금융위는 이달 중 은행권 의견을 수렴해 내년 2월까지 규정 개정을 마무리하고, 내년 주채무계열 선정 때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금융권에서는 현대 그룹을 비롯해 한라 현대산업개발 대성 한국타이어 애경 한솔 SPP 하이트진로 등이 새로 주채무계열 대상 기업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관리대상계열은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상에서 간신히 벗어난 3개 정도가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은행, 감시망 확대…대기업 부실 미리 차단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 경영에 대한 금융권의 과도한 간섭과 자금 조달 위축 가능성을 우려했다. 주채무계열 확대 등으로 사실상 국내 모든 대기업이 관리 대상에 들어간데다 감시 항목과 대상, 제재까지 강화됐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주채권은행과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경영 활동을 해왔는데 이제는 정부라는 시어머니가 회초리까지 들고 우리를 감시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