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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37호 2006년 3월 20일

Cover Story

[Cover Story] [찬란했던 이슬람 왜 후진사회가 됐나] 갈수록 원리주의에 빠져

이슬람 문명은 탄생 초기만 해도 매우 개방적이며 유연한 체제였다. 기독교나 유대교와 달리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했고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다양하게 인정했다. 교황이 지배하고 기독교가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중세 유럽사회와 비교하면 이슬람은 열린 '자유 사회'였다. 그 결과 이슬람 문명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위용은 유럽 전체를 압도했다.

 

하지만 이슬람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서유럽 사회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기를 거치고 종교개혁을 통해 정교 분리가 이뤄지는 등 근대화되었던 반면 이슬람 사회는 갈수록 종교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근본주의로 빠져들었다.

 

◆다른 종교보다 관대했던 초기 이슬람 문명

 

"종교에는 강제가 없느니라." 이 구절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2-256)에 나오는 말이다.

 

이슬람 정복자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이슬람교로 개종할 경우 세금을 낮춰주고 여러 가지 혜택을 줬지만, 피지배 민족을 동화시키고 이슬람 교도로 만들려는 강제적인 시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독교 문명이었던 비잔틴 제국의 통치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이 관대한 아랍 세계에 자발적으로 편입되려는 노력을 벌일 정도였다.

 

버나드 루이스가 쓴 '중동의 역사'(이희수 옮김,까치)를 들여다보자."1492년 스페인에서 축출된 유대인이 터키로 이동해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이것이 결코 유일한 경우가 아니었다. 유대인은 물론 자신의 나라에서 박해를 피한 비(非)국교도 기독교인과 같은 난민들도 오스만의 영토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중략) 이슬람에 정복당한 지역의 농민들은 농토에 관한 한 기독교 통치자들 치하에서보다 훨씬 큰 자유를 얻었다. 세금도 이전 정권이나 이웃 정권들에 비해 가볍게 부과됐다. …(중략)

 

데브쉬르메 용병 제도에 의해 가장 비천한 시골 사람도 국가의 가장 고위직의 권력 상층부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었고, 가족들도 함께 데려갔다. 이것은 당시 기독교 세계의 귀족사회에서는 불가능했던 사회적 이동의 한 형태였다."

 

◆이란혁명 이후 종교 근본주의 경향 확대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가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함락(1453년)시킨 때로부터 550여년이 지났다. 그 당시와 비교하면 현대 유럽 사회는 정치와 종교가 완전히 분리됐고, 개인주의에 확고히 뿌리를 둔 근대화 문명 사회로 이행했다. 반면 이슬람 사회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슬람 사회도 서구 열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한때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려는 시도를 했다. '터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은 1922년 술탄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공화제를 도입했다. 이집트에서는 나세르 대령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 제도를 도입했다.

 

종교를 정치에서 분리해내려는 이슬람 사회 내부의 움직임은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을 거치면서 오히려 'U턴'을 해버렸다. 신정(神政)으로 복귀한 이란 혁명의 목적은 '외세의 지배와 외세의 영향을 받은 모든 이질적이고 이교도적인 불순물을 쓸어내고 신이 만드는 진정한 이슬람 사회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란 혁명의 상징과 표어는 이슬람적이었고,그들의 적은 이교도들이었다. 이란 혁명의 이념은 다른 아랍 국가들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이슬람 근본주의 경향을 강화했다.

 

이스라엘과의 끝없는 분쟁, 석유패권을 둘러싼 서구 사회와의 갈등 증폭은 이슬람 사회를 경직되게 만든 외부 요인들이다. 사회 내부를 민주화하려는 사람들보다는 서구 사회와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근본주의자들이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는 이슬람 강경파인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마호메트 풍자만화로 촉발된 이슬람 사회의 분노는 종교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커녕 종교의 굴레를 더욱 조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자유로운 사회가 '강한 공동체'

 

현대 사회의 발전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 더 나아가 공동체로부터 독립된 개인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인권과 재산권, 그리고 자유는 개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반면 특정한 종교를 강요하고 정치가 종교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기본적인 사상의 자유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이 같은 사회에서는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그랬다. 임진왜란 이후 유교가 배타적인 주자학에 빠져들고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팽배했다. 실용주의를 내세운 실학(實學)은 숱한 탄압을 받았다. 광해군이 폐위당하고,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극으로 치닫던 시기의 조선(朝鮮)은 폐쇄된 사회였다. 그 결과 후기 조선사회는 한반도에 세워졌던 그 어떤 나라들보다 허약한 국가로 전락했다. 일종의 유교 근본주의 체제가 바로 조선후기였다.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교조적 사회는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역사의 교훈이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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